[현장 에세이]
빠른 것이 미덕인 시대, 골목길 안쪽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법 같은 공간들이 있다. 필름 한 롤에 담긴 기다림의 미학을 찾아 연남동의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작되는 ‘기다림’
화소 수와 선명도가 경쟁력이 된 스마트폰 카메라 시대에 역설적으로 ‘현상소’를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사진 속 ‘연남필름’의 간판 위로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은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결과물을 즉시 확인할 수 없는 불편함, 24장 혹은 36장이라는 제한된 기회. 하지만 그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신중함’이라는 선물을 준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피사체를 오래 바라보고, 숨을 참으며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디지털의 무한 복제 속에서 잊혔던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 골목, 사람, 그리고 꽃의 온기
발길을 옮겨 마주한 ‘나띠풀(Nattiful)’ 꽃집 앞 풍경은 아날로그적 삶이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 사이에 놓인 초록빛 나무들과 ‘꽃’이라고 정직하게 쓰인 따뜻한 색감의 간판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이곳의 풍경이 유독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빛의 기록’ 때문이다. 렌즈를 투과해 필름의 입자 위에 새겨진 이 골목의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조금 더 노랗고, 조금 더 부드럽다. 기계적인 완벽함보다는 약간의 노이즈와 빛 번짐이 섞인 사진 한 장이 우리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자극하는 법이다.
⏳ 아날로그는 ‘퇴보’가 아닌 ‘취향’
오늘날 젊은 세대가 필름 사진과 오래된 골목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복고(Retro) 열풍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휘발되는 세상 속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인화지나 직접 가꾼 식물처럼 ‘실체가 있는 것’에 대한 갈증이 투영된 결과다.
사진 속 골목길은 속삭인다. 가끔은 흐릿해도 괜찮다고, 조금 늦게 도착해도 그 과정이 아름다웠다면 충분하다고. 차가운 금속성 도시 한복판에서 발견한 이 아날로그적 풍경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햇살을 느껴보라”는 다정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핸디아카데미 조미영(handacademy.co.kr)